
오랜만에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나무들이 에워싼 무대는 초여름의 숲 같았다. 비록 미술관 앞마당엔 꽃 대신 추위가 몰아쳤지만. 첫 순서는 우쿨렐레 피크닉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으슬으슬했으나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무대에서 들려오는 선율과 노랫소리는 상쾌하고 때론 감미로웠다.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백현진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부엉이와 종달새가 있던 '둘이서'에 이어진 '무릎베게'는 스산한 봄밤에 어울렸다. 푸르스름하고 컴컴한 숲에서 울리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지나 미취학 아동들과 함께 듣는 '학수고대했던 날'이라니.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이 많았다. '여기까지'를 부르면서 백현진과 방준석은 점점 격렬해졌다. 둘은 그간 수없이 부르고 연주했을 노래들을 마치 처음인 양 연주하며 노래했고, 듣는 나도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자리를 뜨고 싶을 만큼 추웠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백현진의 목소리와 방준석의 기타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야외무대를 가득 채웠다. 여름 문턱에 접어든 봄이라기엔 싸늘하다 못해 스산했던 이날의 밤 공기처럼. 그리고 백현진의 무대가 끝나자 거짓말처럼 한기가 사라졌다.
백현진과 방준석도 그렇지만 가게 된 계기는 출연진 가운데 이상은이 있어서였다. 내게 이상은은 13집에서 멈춰 있다. 14집의 어떤 곡을 듣다 만 뒤로. 가사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첫 곡을 들을 땐 직전 공연의 잔상이 채 가시지 않았으나 - 이상은 탓이 아니다. 백현진이 너무 셌다 - '삶은 여행'을 듣는 동안 평온해졌다. 그리고 '어기여 디어라'를 듣는데 예의 한기가 다시 스며들었다. 미술관 너머로 시위소리가 들려오고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건반과 기타 사이로 울리는 이상은의 청아한 목소리에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외롭고 웃긴 가게>를 날마다 듣던 오래전의 기억 외엔. 검고 푸른 빛이 주조였던 백현진 때와 달리 연둣빛의 화사한 조명이 공간을 물들였다. '언젠가는'을 마지막으로 일곱 시 조금 지나 시작했던 공연은 아홉 시를 넘겨서 끝이 났다.
이상은은 상대적으로 적은 곡 수와 시간이었지만, 세트리스트 상으로도 네 곡이었고(다들 원래대로 가지 않은 건 예상했던 바지만) 주어진 시간도 짧은 걸 알았기에 아쉽진 않았다. 백현진만 좀 길어졌는데 그건 좋았다.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관객들이 많았다. 우연히 지나거나 퇴근길 들려온 음악에 이끌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술관 밖에서 보내는 시간도 괜찮았다. 그동안 백현진을 멀리했던 동행은 이날 백현진을 다시 보게 아니 듣게 되었다.
